
별빛 아래 꿈과 사랑의 왈츠 — 라라랜드(La La Land)
2016년 겨울, 전 세계 극장을 보랏빛 노을과 재즈 선율로 물들인 영화가 있다.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 감독의 「라라랜드」(La La Land, 2016)는 개봉 직후부터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으며, 21세기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기준점을 세웠다. 지금 다시 봐도 그 감동은 조금도 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꿈을 좇던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이 영화의 힘은 더욱 깊어진다.
TMDB 평점 7.9/10(17,920명 참여), 예산 3,000만 달러로 전 세계 5억 900만 달러라는 경이로운 흥행 수익을 기록한 라라랜드는,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이면서 동시에 예술가의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진솔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127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웃고, 설레고, 결국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줄거리: LA의 밤하늘 아래 피어난 두 사람의 이야기

이야기는 LA의 끝없는 고속도로 위에서 시작된다. 여배우를 꿈꾸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아(엠마 스톤)와,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열겠다는 꿈에 사로잡힌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우연히 만난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퉁명스럽게 굴지만, LA의 그리피스 천문대 아래에서, 할리우드 언덕 위에서, 오래된 영화관 앞에서 두 사람은 점차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꿈이란 것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미아의 원맨쇼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세바스찬은 친구 키스(존 레전드)의 밴드에 합류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만 자신의 음악적 소신과는 멀어진다. 둘의 관계는 각자의 꿈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면서 조금씩 금이 간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달콤쓸한 상상을 뮤지컬 넘버로 펼쳐 보인다.
데이미언 셔젤: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의 주인공
라라랜드의 탄생을 이야기하려면,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집요한 열정부터 짚어야 한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셔젤은 재학 시절부터 뮤지컬 영화에 대한 각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라라랜드의 초기 버전이었다. 그러나 당시 할리우드에서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안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셔젤은 우회 전략을 택했다. 먼저 저예산 음악 영화 「위플래쉬」(Whiplash, 2014)를 만들어 선댄스 영화제를 정복했고,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 성공을 발판 삼아 마침내 라라랜드 프로젝트를 현실로 끌어냈다. 그 결과, 32세의 나이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캐스팅 비화: 원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라라랜드의 캐스팅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미아 역에는 엠마 왓슨이 물망에 올랐고, 세바스찬 역에는 마일스 텔러가 거론되었다. 텔러는 위플래쉬에서 셔젤과 호흡을 맞춘 바 있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스케줄 문제와 창작 방향의 차이로 두 배우 모두 프로젝트를 떠났고, 결국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라는 최적의 조합이 탄생했다.
고슬링과 스톤은 이미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와 「갱스터 스쿼드」(2013)에서 두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었다. 이 둘의 검증된 케미스트리가 라라랜드에서 꽃을 피운 셈이다. 특히 고슬링은 촬영 전 3개월간 매일 피아노 연습에 매진해, 극 중 연주 장면을 스턴트 없이 직접 소화해냈다. 스톤 역시 수차례 오디션 탈락을 경험한 자신의 실제 이력을 미아라는 캐릭터에 깊이 녹여냈다.
촬영 비하인드: 마법 같은 ‘매직 아워’의 비밀
라라랜드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촬영감독 리누스 산드그렌(Linus Sandgren)의 공로가 크다. 산드그렌은 디지털 촬영이 대세인 시대에 35mm 시네마스코프 필름으로 촬영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덕분에 LA의 노을, 그리피스 천문대의 별빛, 네온사인이 빛나는 거리가 디지털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따뜻하고 몽환적인 질감으로 담겼다.
특히 유명한 그리피스 천문대 댄스 신은 해가 지는 ‘매직 아워’(해질녘 20~30분의 황금빛 자연광)에 맞춰 촬영되었다. 하루에 단 한두 테이크만 가능했기에, 고슬링과 스톤은 수십 번의 리허설을 거쳐 단번에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야 했다. 영화 오프닝의 고속도로 위 군무 장면 역시 실제 LA의 110번과 105번 고속도로 연결 램프에서 촬영되었으며, 이틀간 도로를 통제하고 100명 이상의 댄서가 참여한 대규모 롱테이크로 완성되었다.
음악: 재즈의 부활을 이끈 사운드트랙

라라랜드의 음악은 작곡가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의 작품이다. 허위츠는 셔젤의 하버드 시절 룸메이트이자 음악적 동반자로, 위플래쉬에 이어 다시 한번 환상적인 협업을 보여주었다. 라라랜드의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앨범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City of Stars」는 그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으며, 고슬링의 나지막한 허밍과 함께 시작되는 이 노래는 LA라는 도시의 꿈과 외로움을 완벽하게 포착한다. 「Another Day of Sun」은 오프닝 시퀀스의 에너지 넘치는 군무와 함께 영화의 낙관적 톤을 설정하고, 「Audition (The Fools Who Dream)」은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부르는 곡으로, 꿈꾸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헌사와 같다. 이 곡을 부르는 엠마 스톤의 눈빛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다.
재즈 음악 자체에 대한 영화의 애정도 주목할 만하다. 세바스찬이 순수 재즈에 대한 열정을 역설하는 장면들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예술가의 고집을 대변한다. 실제로 라라랜드 개봉 이후 재즈 관련 음반 판매량과 재즈 바 방문객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아카데미 6관왕, 그리고 역사적인 ‘봉투 사건’
라라랜드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타이타닉」·「이브의 모든 것」과 함께 역대 최다 후보 타이 기록을 세웠다. 최종적으로 감독상, 여우주연상(엠마 스톤), 촬영상, 음악상, 주제가상, 미술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러나 이 시상식을 진정으로 역사적으로 만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작품상 오발표 사건이다. 시상자로 나선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라라랜드”를 작품상 수상작으로 발표했고, 라라랜드 제작진은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 2분 후, 실제 수상작은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임이 밝혀졌다. 잘못된 봉투가 전달된 것이 원인이었다.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던 호로위츠가 직접 “실수가 있었습니다. 문라이트가 작품상입니다”라고 말하며 트로피를 건넨 장면은 아카데미 89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전 세계 뉴스를 장악했고, SNS에서는 순식간에 밈(meme)이 되었다. 오히려 이 해프닝 덕분에 라라랜드와 문라이트 두 영화 모두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엠마 스톤: ‘미아’를 통해 완성한 커리어의 정점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의 미아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할리우드 최정상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흥미로운 것은 스톤 자신의 이야기가 미아의 여정과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는 점이다. 애리조나 출신의 스톤은 15세에 어머니를 설득해 LA로 이주했고, 수없이 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하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미아가 오디션장에서 느끼는 좌절과 희망은 스톤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스톤은 이후 「여왕 폐하의 총애」(2018)로 다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고, 「가련한 것들」(2023)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동세대 최고의 배우임을 재차 증명했다. 라라랜드가 그 여정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라이언 고슬링: 피아노를 정복한 배우
라이언 고슬링의 세바스찬은 고집스럽고 이상주의적이면서도, 묘하게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고슬링은 이 역할을 위해 단순히 피아노 연기를 ‘흉내’내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하루 2~4시간씩, 약 3개월간의 맹연습 끝에 영화 속 모든 피아노 장면을 직접 연주했다. 셔젤 감독은 “고슬링의 손을 클로즈업으로 찍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슬링은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수상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에게 돌아갔다),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바비」(2023)에서 켄 역으로 또 한 번 대중적 사랑을 받으며, 라라랜드에서 보여준 코미디와 로맨스의 균형 잡힌 연기력을 다시금 증명했다.
왜 라라랜드는 시간이 지나도 빛나는가
라라랜드가 단순한 ‘예쁜 뮤지컬 영화’를 넘어서는 이유는, 꿈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데 반해, 라라랜드는 ‘성장을 위한 이별’이라는 씁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펼쳐지는 ‘만약의 세계’는 관객 각자의 지나간 사랑, 포기한 꿈, 걸어온 길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또한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 스탠리 도넌의 「사랑은 비를 타고」, 빈센트 미넬리의 「밴드 왜건」 등 할리우드 뮤지컬 황금기의 클래식들에 대한 깊은 오마주로 가득하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별들 사이를 춤추는 장면은 명백히 「사랑은 비를 타고」를 연상시키며, 색채 사용법은 자크 드미의 영향이 짙다. 이러한 레퍼런스들은 영화 팬들에게 보물찾기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흥행과 문화적 영향
예산 3,000만 달러로 전 세계 5억 9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라라랜드는,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도 상업적으로 대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영화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 뮤지컬 장르에 대한 투자가 다시 활발해졌으며, 「위대한 쇼맨」(2017), 「인 더 하이츠」(2021) 등 후속 뮤지컬 영화들의 제작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LA 관광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피스 천문대, 엔젤스 플라이트 철도, 콜로라도 스트리트 브리지 등 영화 속 촬영지들은 ‘라라랜드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수많은 팬들이 방문하고 있다. 영화의 태그라인이었던 “이곳에서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는 문구는 LA라는 도시가 가진 꿈과 환멸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요약한다.
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함께 볼 작품들
| 영화 | 감독 | 추천 이유 |
|---|---|---|
| 위플래쉬 (2014) | 데이미언 셔젤 | 같은 감독의 전작. 재즈에 대한 광기어린 열정을 다룬 수작 |
| 쉘부르의 우산 (1964) | 자크 드미 | 라라랜드의 가장 큰 영감이 된 프랑스 뮤지컬. 이별의 정서가 닮아 있다 |
| 비긴 어게인 (2013) | 존 카니 | 음악과 도시, 새로운 시작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 |
OTT에서 다시 만나는 라라랜드
라라랜드는 현재 다수의 OTT 플랫폼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처음 만났던 감동을 집에서 다시 경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감상하면,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정의 결이 온전히 전해진다. 처음 보는 분이든 다시 보는 분이든, 라라랜드는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선물하는 영화다. 20대에는 꿈을 향한 열정에 가슴이 뛰고, 30대 이후에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울컥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재생 버튼을 눌러보길 권한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그들이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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