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르조 레오네의 마지막 걸작, 40년이 지나도 빛나는 서사시
1984년, 이탈리아의 거장 세르조 레오네가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개봉 당시 미국에서 처참한 흥행 실패를 맞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갱스터 영화 중 하나로 재평가받았다. 229분이라는 압도적인 러닝타임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범죄 서사가 아니다. 한 남자의 일생을 관통하는 우정과 배신, 사랑과 상실, 그리고 기억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레오네가 10년 넘게 기획하고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이 유작은, 개봉 4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기본 정보
| 제목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 개봉 | 1984년 |
| 감독 | 세르조 레오네 |
|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제임스 우즈, 엘리자베스 맥거번, 조 페시, 버트 영, 트리트 윌리엄스 |
| 음악 | 엔니오 모리꼬네 |
| 장르 | 드라마, 범죄 |
| 러닝타임 | 229분 (감독판 기준) |
| 제작비 | $30,000,000 |
| 흥행 | $5,500,000 (미국 극장 기준) |
| 평점 | TMDB 8.4 / 10 |
줄거리 — 세 시대를 가로지르는 한 갱스터의 기억
영화는 1921년 뉴욕의 유대인 빈민가, 1933년 금주법 시대, 그리고 1968년 노년기라는 세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어린 시절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만난 누들스와 맥스는 거리의 좀도둑에서 시작해 금주법 시대의 거물 갱스터로 성장한다. 그러나 야망의 크기가 다른 두 사람의 우정에는 점차 균열이 생기고,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누들스는 모든 것을 잃고 자취를 감춘다.
35년 후, 늙은 누들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대장을 받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과거의 거리를 다시 걷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 기억과 현실이 뒤섞이며, 우정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모호하다.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인지, 아편에 취한 누들스의 환상인지 — 레오네는 관객에게 그 해석을 열어둔다.
연출 분석 — 느린 호흡이 만들어내는 압도적 서사
세르조 레오네의 연출 스타일은 한마디로 ‘기다림의 미학’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보여준 느리고 긴장감 넘치는 호흡을 이 작품에서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229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단순히 긴 것이 아니다. 인물의 시선, 침묵, 공간의 질감을 통해 대사 없이도 감정을 전달하는 레오네 특유의 방법론이 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영화의 시간 구조는 파격적이다. 연대기적 순서를 철저히 거부하고, 기억이 떠오르는 대로 시간을 뒤섞는다. 이 구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영화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누들스에게 과거는 순서대로 정리된 역사가 아니라, 후회와 그리움으로 뒤엉킨 감정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면 다른 시대가 펼쳐지고, 전화벨 소리가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전환 장치가 된다.
시각적으로도 이 영화는 경이롭다. 촬영 감독 토니노 델리 콜리가 포착한 뉴욕의 풍경 — 1920년대 빈민가의 생동감, 1930년대 금주법 시대의 화려함, 1960년대의 쓸쓸함 — 은 각 시대의 정서를 완벽하게 담아낸다. 4시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매 순간이 시각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연기 분석 — 시간을 관통하는 배우들의 연기

로버트 드 니로 — 누들스, 기억 속의 남자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영화에서 중년과 노년의 누들스를 연기한다. 택시 드라이버나 레이징 불에서 보여준 폭발적 에너지와는 정반대의 연기다. 이 영화의 드 니로는 말이 적고, 눈으로 연기한다. 35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누들스의 눈에는 회한과 그리움, 그리고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 겹겹이 쌓여 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드 니로가 짓는 미소는 영화사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표정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행복인지, 체념인지, 혹은 아편이 만들어낸 환각의 미소인지 — 그 모호함 자체가 이 영화의 본질이다.

제임스 우즈 — 맥스, 야망이 삼킨 우정
제임스 우즈의 맥스는 누들스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누들스가 감정적이고 과거에 매이는 인물이라면, 맥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야망의 화신이다. 우즈는 카리스마와 불안정함을 동시에 품은 연기로 맥스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다. 관객은 맥스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 인물인지, 그리고 그 야망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를 우즈의 눈빛만으로 감지하게 된다. 두 배우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다.

엘리자베스 맥거번 — 데보라, 닿을 수 없는 꿈
엘리자베스 맥거번이 연기한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평생의 사랑이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빈민가 출신의 갱스터와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 — 이 둘의 관계는 처음부터 비극을 예고한다. 맥거번은 우아함과 냉정함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으며, 누들스의 세계와 결코 교차할 수 없는 다른 궤도의 삶을 표현해낸다.
음악 — 엔니오 모리꼬네의 서정적 선율
세르조 레오네와 엔니오 모리꼬네. 이 둘의 조합은 영화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파트너십 중 하나다. 레오네는 촬영 전에 모리꼬네의 음악을 먼저 받아 현장에서 틀어놓으며 연기 지도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서사 그 자체다.
“Deborah’s Theme”은 누들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대변하는 곡으로,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며 점점 깊은 감정의 층위를 열어간다. 팬플루트의 애절한 선율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다. “Amapola”는 젊은 날의 순수함과 아련함을 담아내며, 이 곡이 흘러나오는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모리꼬네의 음악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감정적 깊이는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 트리비아
- 배급사의 치명적 편집: 미국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는 229분짜리 원본을 139분으로 잘라내고, 레오네의 비선형 시간 구조를 시간순으로 재편집해 개봉했다. 이 편집판은 영화의 핵심인 기억과 시간의 주제를 완전히 파괴했고, 결과적으로 제작비 3,000만 달러 대비 미국 극장 수입 550만 달러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 유럽에서의 재평가: 반면 유럽에서는 레오네의 원래 버전(229분)에 가까운 형태로 개봉되어 비평적 호평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원본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영화는 영화사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 2012년 확장판 복원: 2012년 칸 영화제에서 251분짜리 확장 복원판이 상영되었다. 기존에 잘려나간 장면들이 추가되어 인물들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세르조 레오네의 유작: 레오네는 이 영화 이후 새 작품을 준비하던 중 198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그의 마지막 완성작이 되었다.
- 10년 넘게 기획한 꿈의 프로젝트: 레오네는 1960년대 후반부터 해리 그레이의 자전적 소설 ‘후드’를 각색하고 싶어했다. 서부극의 대가로 명성을 떨치는 동안에도 이 프로젝트를 놓지 않았고, 10년 넘는 기획 끝에 마침내 완성했다.
- 대부를 거절한 이유: 레오네는 대부(1972)의 감독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미국 갱스터 서사시 — 바로 이 영화 — 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결국 대부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돌아갔고, 레오네는 자신만의 갱스터 영화를 완성했다.
연관 작품 추천
| 대부 (The Godfather, 1972) | 코폴라의 마피아 서사시. 레오네가 거절한 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과 함께 갱스터 영화의 양대 산맥이다. |
| 굿펠라스 (Goodfellas, 1990) | 마틴 스코세이지의 역동적인 갱스터 영화. 레오네의 서정적 접근과는 다른, 속도감 있는 스타일로 같은 세계를 그린다. |
|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 레오네의 대표작. 서부극이지만, 느린 호흡과 모리꼬네의 음악이라는 DNA가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이어진다. |
총평 — 시간이 증명한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쉬운 영화가 아니다. 229분이라는 러닝타임, 비선형 시간 구조, 의도적으로 열어둔 해석의 여지 — 모든 것이 관객의 인내와 집중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다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누들스가 아편굴에서 짓는 미소로 시작해, 같은 미소로 끝나는 이 영화는 결국 기억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진짜인가, 아니면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재구성한 환상인가. 세르조 레오네는 이 질문을 4시간에 걸쳐 묻고, 답을 주지 않은 채 떠났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일 것이다.
세르조 레오네의 유작이자 필생의 역작. 갱스터 영화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인간의 기억과 시간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잔인한 명상이다. 개봉 당시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이 걸작은, 이제 시간이 증명해주었다.
평점: ★★★★★ (10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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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항목 | 점수 |
|---|---|
| 스토리 | ★★★★★ |
| 연출 | ★★★★★ |
| 연기 | ★★★★★ |
| 음악 | ★★★★★ |
| 비주얼 | ★★★★☆ |
| 총점 | 10 / 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