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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리뷰: 봉준호가 우주에서 던지는 블랙 코미디의 질문

·Mickey 17, SF 영화, 기생충
미키 17 스틸컷

봉준호의 귀환,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

2019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을 달성하며, 비영어권 영화가 넘을 수 없다고 여겨지던 벽을 단숨에 허물었다.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고, 전 세계 영화 팬들은 봉준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기다림은 무려 6년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2월 28일,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Mickey 17)이 전 세계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생충 이후 첫 번째 영화이자, 봉준호 감독 커리어 최초의 영어 영화. 제작비 1억 1,800만 달러가 투입된 할리우드 대작이다. 봉준호가 반지하에서 우주로, 계급 풍자에서 SF 코미디로 얼마나 거대한 도약을 했는지 보여주는 프로젝트였다.

개봉으로부터 약 13개월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꺼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극장에서의 열기가 식은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이 독특한 SF 코미디를 차분하게 곱씹어볼 수 있는 시점이다.

미키 17 공식 포스터
미키 17 공식 포스터 – “오늘도 죽으러 갑니다, 인류를 위해”

줄거리: 죽어도 괜찮은 남자, 그런데 두 명?

미키 반스는 빚에 쫓기다 지구를 떠난 남자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익스펜더블'(Expendable).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도맡아 수행하고, 죽으면 기억과 인격이 복제된 새로운 몸으로 다시 ‘프린트’되어 돌아오는 존재다. 미키는 이미 16번 죽고 되살아났다. 그래서 그는 미키 17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위험한 임무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 미키 17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같은 기억, 같은 인격, 같은 얼굴. 하지만 개척단의 철칙에 따르면, 같은 사람의 복제본이 동시에 두 명 존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이 설정만으로도 봉준호가 왜 이 이야기에 끌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존재 가치가 ‘대체 가능성’으로 환원되는 세계. 죽어도 다시 프린트하면 그만인 일회용 인간. 이것은 기생충에서 반지하를 통해 보여줬던 계급 문제의 SF 버전이다. 봉준호는 늘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세계의 부조리를 그려왔고, 미키 17에서도 그 시선은 여전하다.

미키 17 스틸컷

로버트 패틴슨: 죽음을 일상으로 사는 남자의 얼굴

미키 반스 역에는 로버트 패틴슨이 캐스팅되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뱀파이어 에드워드로 전 세계적 스타가 된 후, 구드 타임(2017), 등대(2019), 테넷(2020) 등 독립영화와 작가주의 대작을 오가며 배우로서의 깊이를 증명해 온 패틴슨. 2022년에는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에서 브루스 웨인을 연기하며 할리우드 최전선에 서기도 했다.

미키 17에서 패틴슨은 무려 1인 2역을 소화한다. 소심하고 겁 많지만 어찌어찌 살아남는 미키 17과, 프린트 과정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좀 더 대담하고 거친 미키 18. 같은 얼굴, 같은 기억을 가졌지만 성격이 다른 두 존재를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도전이다. 패틴슨은 미세한 표정 차이와 몸짓의 변화로 두 미키를 구분하며, 코미디와 비극 사이를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의 조합은 사전부터 화제였다. 봉준호는 패틴슨에 대해 “코미디 타이밍이 천재적”이라고 극찬한 바 있으며, 패틴슨 역시 봉준호와의 작업을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경험”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거장 감독과 할리우드의 카멜레온 배우가 만든 케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다.

올스타 캐스팅: 개척단을 둘러싼 인물들

미키 17의 캐스팅 라인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벤트다. 개척단의 지도자 케네스 마셜 역에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마크 러팔로가 이름을 올렸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헐크로도 유명한 러팔로는, 이 영화에서 카리스마 있지만 어딘가 위태로운 리더를 연기한다.

미키의 연인 나샤 역의 나오미 애키는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 인지도를 높였다. 그리고 개척단의 실질적 권력자 일파 역에는 토니 콜렛이 캐스팅되었다. 히레디터리(2018)에서 보여준 소름 끼치는 연기로 호러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콜렛은, 미키 17에서도 냉철하고 무자비한 인물을 특유의 존재감으로 완성한다.

특히 주목할 캐스팅은 스티븐 연이 맡은 티모 역이다. 워킹 데드의 글렌으로 전 세계적 사랑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미나리(2020)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봉준호의 영화에 한국계 배우가 주요 역할로 출연한다는 점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미키 17 스틸컷

원작 소설 《Mickey7》: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세계

미키 17의 원작은 미국 SF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Edward Ashton)의 소설 《Mickey7》이다. 2022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익스펜더블’이라는 독창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 복제와 정체성의 문제를 블랙 코미디 톤으로 풀어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며, 미키의 내면 독백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소설을 읽고 즉시 영화화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Mickey7》은 미키가 7번째 프린트인 시점을 다루지만, 영화는 제목을 미키 17로 바꾸며 주인공이 이미 16번이나 죽었다는 설정을 택했다. 숫자 자체가 이 캐릭터의 비극성을 더 강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17번이나 죽고 돌아온 사람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 숫자 안에 축적된 공포, 체념, 그리고 어쩌면 무감각함이 미키라는 캐릭터를 정의한다.

애슈턴은 이후 속편 《Antimatter Blues》(2023)도 출간했는데, 이 작품에서 미키의 이야기는 더 넓은 우주로 확장된다. 영화가 성공적으로 시리즈화된다면, 후속편의 원작 소재도 이미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정재일의 음악: 한국 음악가가 만든 우주의 소리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정재일은 한국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클래식, 국악, 전자음악, 앰비언트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 세계는 장르의 경계를 거부한다. 봉준호가 할리우드 대작의 음악을 한국 음악가에게 맡겼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기생충에서 정재일의 음악은 반지하의 습기와 대저택의 위선을 소리로 구현했고, 미키 17에서 그의 음악은 얼음행성의 황량함과 인간 복제의 기묘함을 청각적으로 전달한다.

흥행과 숫자로 보는 미키 17

제작비 1억 1,800만 달러가 투입된 미키 17은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3,344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봉준호의 이름값과 로버트 패틴슨의 스타 파워를 고려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라 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통상적으로 제작비의 2~2.5배를 벌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보는데, 미키 17은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숫자만으로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TMDB 기준 6.8/10(3,357명 평가)이라는 평점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나름의 재미와 의미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도 개봉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살인의 추억(2003)이 그랬고, 마더(2009)가 그랬다. 미키 17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독특한 매력이 더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미키 17 스틸컷

트리비아: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

1. 봉준호와 SF의 인연
미키 17이 봉준호의 첫 SF 영화는 아니다. 2013년 설국열차에서 이미 디스토피아적 SF 세계관을 다룬 바 있고, 2017년 옥자에서는 유전자 조작 동물이라는 SF적 소재를 다뤘다. 흥미로운 점은 봉준호의 SF가 항상 ‘인간의 계급’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칸 구분, 옥자의 기업과 동물, 미키 17의 익스펜더블 시스템. 모두 누군가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2. 로버트 패틴슨의 역대급 도전
패틴슨은 미키 17과 미키 18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장면에서 두 캐릭터가 대화하는 씬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패틴슨은 이전에도 하이 라이프(2018), 등대(2019) 등에서 극한의 상황에 놓인 캐릭터를 즐겨 연기해 왔는데, ’17번 죽은 남자’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다.

3. 기생충 이후 6년의 공백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6년간 공백을 가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할리우드 대작의 복잡한 제작 과정, 그리고 기생충이라는 역사적 성공 이후의 부담감이 겹쳤다. 봉준호는 이 기간 동안 미키 17의 각본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차례 각본을 수정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4. 137분의 러닝타임
미키 17의 러닝타임은 137분(2시간 17분)이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기생충(132분), 설국열차(126분), 옥자(120분)보다 긴 러닝타임이다. SF 세계관의 설정, 복제 인간의 정체성 문제, 코미디와 액션 그리고 철학적 질문까지 담아내야 했기에 이 정도 분량이 필요했을 것이다.

5. 스티븐 연과 봉준호의 만남
워킹 데드로 글로벌 스타가 된 스티븐 연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와 한국인 감독의 상징적인 만남으로 주목받았다. 스티븐 연은 이 영화에서 미키와 함께 개척단에 소속된 티모 역을 맡아, 극 중 긴장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봉준호의 시그니처: 유머와 공포의 공존

봉준호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장르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웃음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고, 기생충에서 코미디와 스릴러가 한 편의 영화 안에 공존했다. 미키 17에서도 이 봉준호식 장르 혼합은 여전하다. 미키가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씁쓸한 사회 비평이다. 관객은 웃으면서도 “이게 웃을 일인가?” 하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SF, 코미디, 모험이라는 장르 분류가 붙어 있지만, 봉준호의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이 봉준호의 영화가 특별한 이유이고,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좋아했다면 추천하는 작품

설국열차 (2013) –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SF 영화. 멈추지 않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투쟁을 그린 이 작품은 미키 17과 같은 ‘소모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공유한다. 크리스 에반스 주연으로, 봉준호의 할리우드 진출 이정표가 된 작품이다.

더 배트맨 (2022) – 로버트 패틴슨 주연. 미키 17에서의 패틴슨이 궁금하다면, 그가 완전히 다른 결의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는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맷 리브스 감독의 느와르적 접근이 돋보이는 히어로물이다.

(Moon, 2009) – 던컨 존스 감독, 샘 록웰 주연. 달 기지에서 혼자 근무하는 남자가 자신의 복제본과 마주하는 이야기. 미키 17과 같은 ‘복제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며, 소규모 예산으로 만든 SF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총평: 지금 다시 봐도 빛나는 봉준호의 도전

미키 17은 완벽한 영화인가? 솔직히 말하면, 기생충의 후속작이라는 거대한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억 1,800만 달러의 제작비 대비 1억 3,344만 달러의 수익이라는 숫자는 상업적으로 아쉬운 결과이고, TMDB 6.8이라는 평점은 봉준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높은 점수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볼수록,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점점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대체 가능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복제본과 원본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는가. 누군가를 ‘소모품’으로 만드는 시스템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봉준호는 이 무거운 질문들을 블랙 코미디라는 옷을 입혀 관객에게 건넸고, 로버트 패틴슨은 두 개의 미키를 통해 그 질문에 얼굴을 부여했다.

극장 개봉이 끝난 지금, OTT나 스트리밍을 통해 이 영화를 만나보길 권한다. 봉준호의 세계는 한 번 보고 끝낼 수 없는 법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감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디테일과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봉준호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출처 및 데이터
영화 정보, 평점, 출연진, 수익 데이터: TMDB (The Movie Data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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